사람사는 이야기

[스크랩] 시인 박인환의 묘소에서~

살어리랏다 (1973~20xx) 2010. 10. 16. 18:06

 

시인 박인환의 대표작인 '목마와 숙녀'란 시를 나는 지금도

줄줄 외우고 있다. 내가 이 시를 외우기 위해 노력한 적은 없지만

이십대 초반 무렵부터 이 시를 완전히 외우게 되었지 않나 싶다.

아마, 이 시를 좋아하게 되면서 자주 들여다 보게 되고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이 시를 외울 수 있게 된 것 같다. 그리고 그의 또 다른

대표작인 '세월이 가면'이란 시도 역시 외우고 있다.

그러면서 이 시인의 이름은 나에겐 특별한 존재가 되었다.

 

십여년 전 쯤에 망우리 공원묘지 산책길을 운동삼아 걷다가 안내판에서

박인환씨의 묘지가 이 곳에 있다는 것을 알고 찾아가 본 적이 있었다.

그리고 그 초라함에 놀란 적이 있었다. 망우리 공원 묘지에 있는 많은

유명인사들의 묘지에 비해서 박인환씨의 묘지는 그야말로 너무 초라했던

것이다. 그리고 오늘 다시 그의 묘지를 찾아 보았다. 까닭없이 문득

이 곳을 찾아보고 싶다는 생각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그의 묘지는 망우리 고갯길 정상 부근에 있는 공원묘지 입구를 따라

올라가면 주차장과 관리사무소가 있는 정문이 나오는데 정문을 지나

조금 더 올라가면 순환도로의 갈림길이 나오고 오른편으로 백미터 정도

더 걸어 올라가면 돌비석과 함께 묘지로 내려가는 오솔길을 만날 수가 있다.

 

 

 

정문을 지나서 조금 올라가다가 하얀 꽃이 흐드러지게 피어 있는

나무 한 그루를 만났다. 이름은 알 수 없었지만 먼저 디카에 담아 주었다.

 

 

사람들의 눈길을 붙잡아 둘만큼 이쁜 꽃이었다.

 

 

조금 더 걸어올라 가자, 묘지의 입구임을 알리는

아스팔트 길 옆에 세워져 있는 돌비석을 만났다.

거기엔 '목마와 숙녀'의 마지막 부분에 해당하는

시의 한 구절이 새겨져 있었다.

 

 

묘지로 내려가는 오솔길 입구엔 철쭉이 피어 있었고~

 

 

꽃이 다 지고 잎이 무성해진 벚꽃 나무가 대문인양 잎을 드리우고 있었다.

 

 

30미터 정도 걸어 내려 갔을까~ 거기에 그의 묘지가 있었다.

무덤앞에도 돌비석이 세워져 있었고 거기엔 그의 시 '세월이 가면'의

한 구절이 새겨져 있었다.

 

(지금 그 사람 이름은 잊었지만 그 눈동자 입술은 내 가슴에 있네)

 

 

시인 박인환은 1926년8월15일 강원도 인제에서 태어나서

1956년3월20일 31세의 나이에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났다고 한다.

시인 이상을 기리며 3일동안 연거푸 마신 술이 화근이 되어

그를 죽음에 이르게 했을거라 사람들은 추측하고 있다.

유족으로는 부인과 삼남매가 있었다고 한다.

그는 조니워커란 술과 카멜담배를 즐겨 피웠다고 한다.

그의 별명은 명동의 백작이었는데 훤칠한 외모와 패션감각이

그런 별명을 갖게 된 이유라고 했다.

그의 죽음에 대한 또 다른 해석은 그 때 막 시인으로서 꽃을 피우기 시작했으나

그해 연말 자유문학상 수상 실패와 미래에 대한 불안, 빈곤등이 겹쳐 술로 나날을

보내다가 '꽃이 피면 밀린 술값을 갚겠다'는 주모와의 약속을 지키지 못한 채

꽃이 피기도 전에 세상을 떠났다고 했다. 그의 무덤엔 생전에 그가 좋아하던

조니워커와 카멜담배가 함께 묻혔다고 한다.

 

 

묘지의 가장자리엔 팻말이 하나 꽂혀 있었다.

공원묘지에서 꽂아 둔 것으로 보였는데 무연고 묘지에 해당되어

올해 안에 신고하지 않으면 임의로 개장 처리 하겠다는 경고판이나

마찬가지였다. 어쩌면 내년엔 사라져 버릴지도 모를 무덤인 것이다.

 

 

무덤위엔 제비꽃이 무심하게 피어 있었고~

 

 

딸기꽃도 노랗게 무덤을 장식하고 있었다.

 

 

그리고 이름모를 풀꽃 하나가 방문객을 향해 손을 흔들고 있었다.

 

 

그의 묘지의 모습이다.

그의 시 '세월의 가면'은 술집에서 즉흥적으로 지은 것으로 유명하다.

지금까지도 노래로 불리면서 애송되고 있는 이 시는 선술집에서 술을

마시다가 휴지에 즉흥적으로 쓴 시를 동석했던 작곡가 이진섭이

역시 즉흥으로 곡을 붙여서 탄생한 노래라고 한다.

그야말로 낭만의 시대에 가장 낭만적인 시 한편이 세상에 태어난 것이다.

 

 

돌비석 앞에는 아주 작은 노란꽃이 예쁘게 피어 있었다.

비교적 여러 사람들이 그를 추모하기 위해서든 호기심으로든 묘지를

많이 찾는 듯 했다. 묘지로 내려가는 오솔길은 사람들이 오간 흔적이

선명하게 남아 있었고 묘지도 비교적 깔끔하게 단장되어 있었다.

 

 

 

 

언제 또 다시 이 무덤을 찾아 보고 싶은 생각이 들진 모르지만

그가 남긴 시는 앞으로도 계속 내 기억속에 남아서 그 시를 떠올릴

때마다 이 아름다운 시인의 이름도 함께 떠오를 것이다.

오늘은 그가 생전에 좋아했다던 술 한잔 담배 한 개피 준비하지 못했지만

혹 다음에 또 들르게 된다면 그땐 조니워커 대신 소주라도 들고오고

카멜 담배는 아니더라도 담배 한개피를 꼭 준비해 올 것이다.

어쩌면 그는 그의 시속의 구절처럼 인생은 외롭지도 않고 그저 잡지의

표지처럼 통속하다는 것을 너무 빨리 깨우쳐 버린 것이 그의 불행이었고

또 그를 일찍 세상과 등지게 만든 원인이 된 것은 아니었을까?

 

봄 햇살이 그의 무덤 위에서 그 또한 무심하게 반짝이고 있었다.

그의 시 목마와 숙녀를 노래 부르듯 중얼거리며 그의 묘지를 걸어 나왔다.

그는 31세로 일찍 세상을 떠났지만 그의 시는 앞으로도 그가 산 인생보다

몇배는 더 오래 또는 영원히 살아갈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보면 그는

행복한 사람이다. 그의 시와 그의 이름은 그가 살다간 인생보다 훨씬 더

빛나고 아름답게 사람들에게 기억되고 있기 때문이니까~

다시 도로위로 올라서자 바람과 함께 한무리의 사람들이 내 곁을

스쳐 지나갔다. 왠지 마음속에서 짐 하나를 덜어 낸듯이 가벼워진

느낌이었다. 그를 추모하는 사람들의 방명록에 감히 내 이름자를

살며시 남겨놓고 온 기분이랄까......!

그렇게 그의 묘소를 다녀왔다.

 

 

 

 

출처 : 행복한 날의 상상^^
글쓴이 : 저비스 원글보기
메모 :


박인환(朴寅煥, 1926년 8월 15일 ~ 1956년 3월 20일)은 한국 1950년대의 대표적인 모더니즘 시인이다.


1926년 강원도 인제에서 출생하였고 경성제일고보를 거쳐 평양의전을 중퇴하였다.

1946년 〈거리〉를 발표하여 등단하였으며 1949년 동인그룹 '후반기'를 발족하여 활동하였다. 

1949년 5인 합동시집 《새로운 도시와 시민들의 합창》을 발간하여 본격적인 모더니즘의 기수로 주목받았다.

1955년 《박인환 시선집》을 간행하였고 1956년 심장마비로 자택에서 별세하였다. 

묘소는 망우리 공동묘지에 있다. 1976년에 시집 《목마와 숙녀》가 간행되었다.







목마와 숙녀 - 박인희 낭송


한잔의 술을 마시고 

우리는 버어지니아 울프의 생애와 

목마를 타고 떠난 숙녀의 옷자락을 이야기 한다 

목마는 주인을 버리고 거저 방울 소리만 울리며

가을 속으로 떠났다. 술병에서 별이 부서진다 

그러한 잠시 내가 알던 소녀는 

정원의 초목 옆에서 자라고 

문학이 죽고 인생이 죽고 

사랑의 진리마저 애증의 그림자를 버릴 때 

목마를 탄 사랑의 사람은 보이지 않는다 

세월은 가고 오는 것 

한 때는 고립을 피하여 시들어가고 

이제 우리는 작별하여야 한다 

술병이 바람에 쓰러지는 소리를 들으며 

늙은 여류 작가의 눈을 바라보아야 한다 

....등대에.... 

불이 보이지 않아도 

거저 간직한 페시미즘의 미래를 위하여 

우리는 처량한 목마소리를 기억하여야 한다 

모든 것이 떠나든 죽든 

거져 가슴에 남은 희미한 의식을 붙잡고 

우리는 버어지니아 울프의 서러운 이야기를 들어야 한다 

두개의 바위 틈을 지나 청춘을 찾은 뱀과 같이 

눈을 뜨고 한잔의 술을 마셔야 한다 

인생은 외롭지도 않고 

거저 잡지의 표지처럼 통속하거늘 

한탄할 그 무엇이 무서워서 우리는 떠나는 것일까 

목마는 하늘에  있고 

방울소리는 귓전에 철렁거리는데 

가을바람 소리는 내 쓰러진 술병 속에서 목메어 우는데 






가을의 유혹


가을은 내 마음에 유혹의 길을 가리킨다

숙녀들과 바람의 이야기를 하면 가을은 다정한 피리를 불면서 회상의 풍경을 지나가는 것이다

전쟁이 길게 머물은 서울의 노대에서 나는 모딜리아니의 화첩을 뒤적거리며

적막한 하나의 생애의 한시름을 찾아보는 것이다

그러한 순간 가을은 청춘의 그림자처럼 또는 낙엽 모양 나의 발목을 끌고

즐겁고 어두운 사념의 세계로 가는 것이다

즐겁고 어두운 가을 이야기를 할 때 목메인 소리는 나는 사랑의 말을 한다

그것은 폐원이 있던 벤치에 앉아 고갈된 분수를 바라보며

지금은 죽은 소녀의 팔목을 잡고 있던 것과 같이 쓸쓸한 옛날의 일이여

여름은 느리고 인생은 가고 가을은 또 다시 오는 것이다

회색 양복과 목관악기는 어울리지 않는다 그저 목을 늘어뜨리고

눈을 감으면 가을의 유혹은 나로 하여금 잊을 수 없는 사랑의 사람으로 한다

눈물 젖은 눈동자로 앞을 바라보면 인간이 메몰 될 낙엽이 바람에 날리어 나의 주변을 휘돌고



살아있는 것이 있다면


현재의 시간과 과거의 시간은 아마 모두 미래의 시간에 존재하고

미래의 시간은 과거의 시간에 포함된다

T. S. 엘리엇


살아있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나와 우리들의 죽음보다도

더한 냉혹하고 절실한

회상과 체험일지도 모른다


살아있는 것이 있다면

여러 차례의 살육에 복종한 생명보다도

더한 복수와 고뇌를 아는

복수와 저항일지도 모른다


한 걸음 한 걸음 나는 허물어지는

정적(靜寂)과 초연(硝煙)의 도시 그 암흑 속으로......

명상과 또 다시 오지 않을 영원한 내일로......

살아있는 것이 있다면

유형(流刑)의 애인처럼 손잡기 위하여

이미 소멸된 청춘의 반역을 회상하며

회의와 불안만이 다정스러운 듯

모멸의 오늘을 살아 나간다


...... 아, 최후로 이 성자의 세계에

살아있는 것이 있다면 분명히

그것은 속죄의 회화(繪畵) 속의 나녀(裸女)와

회상도 고뇌도 이제 망령에게 팔은

철 없는 시인

나의 눈감지 못한

단순한 상태의 시체일 것이다



검은 강


신(神)이란 이름으로

우리는 최후의 노정을 찾아보았다

어느 날 역전에서 들여오는

군대의 합창을 귀에 받으며

우리는 죽으러 가는 자와는

반대 방향의 열차에 앉아

정욕처럼 피폐한 소설에 눈을 흘겼다


지금 바람처럼 교차하는 지대

거기엔 일체의 불순한 욕망이 반사되고

농부의 아들은 표정도 없이

폭음(爆音)과 초연(硝煙)이 가득 찬

생과 사의 경지로 떠난다


달은 정막보다 더욱 처량하다

멀리 우리의 시선을 집중한

인간의 피로 이룬

자유의 성채

그것은 우리와 같이 퇴각하는 자와는 관련이 없다


신이란 이름으로

우리는 저 달 속에

암담한 검은 강이 흐르는 것을 보았다



세월이 가면


지금 그 사람 이름은 잊었지만

그 눈동자 입술은

내 가슴에 있네

바람이 불고

비가 올 때도

나는 저 유리창 밖 가로등

그늘에 밤을 잊지 못하지


사랑은 가도

옛날은 남는 것

여름날의 호숫가 가을의 공원

그 벤치 위에

나뭇잎은 떨어지고

나뭇잎은 흙이 되고

나뭇잎에 덮여서

우리들 사랑이 사라진다 해도


지금 그 사람 이름은 잊었지만

그 눈동자 입술은

내 가슴에 있네

내 서늘한 가슴에 있네



검은 신이여


저 묘지 위에서 우는 사람은 누구입니까

저 파괴된 건물에서 나오는 사람은 누구입니까

검은 바다에서 연기처럼 꺼진 것은 무엇입니까

인간 내부에서 사멸 된 것은 무엇입니까

1년이 끝나고 그 다음해에 시작되는 것은 무엇입니까

전쟁이 빼앗아간 나의 친우는 어데서 만날 수 있습니까

슬픔 대신에 나에게 죽음을 주시오

인간을 대신하여 세상을 풍설로 뒤덮어 주시오

건물과 창백한 묘지 있던 자리에

꽃이 피지 않도록,


하루의 1년의 전쟁의 처참한 추억은

검은 신이여

그것은 당신의 주제일 것입니다



1950년의 만가(輓歌)


불안한 언덕 위에로

나는 바람에 날려 간다

헤아릴 수 없는 참혹한 기억 속으로

나는 죽어간다

이 행복에서 차단된

지폐처럼 더럽힌 여름의 호반

석양처럼 타올랐던 나의 욕망과

예절있는 숙녀들은 어데로 갔나

불안한 언덕에서

나는 음영처럼 쓰러져 간다.

무거운 고뇌에서 단순으로

나는 죽어간다

지금은 망각의 시간

서로 위기와 인식과 우애를 나누었던

아름다운 연대를 회상하면서

나는 하나의 모멸의 개념처럼 죽어간다



얼굴


우리 모두 잊혀진 얼굴들처럼

모르고 살아가는 남이 되기 싫은 까닭이다


기를 꽂고 산들 무얼하나

꽃이 내가 아니듯 내가 꽃이 될 수 없는 지금

물빛 몸매를 감은

한 마리 외로운 학으로 산들 무얼하나


사랑하기 전부터

기다림을 배운 습성으로 인해

온밤 내 비가 내리고

이제 내 얼굴에도 강물이 흐른다


가슴에 돌단을 쌓고 손 흔들던 기억보단

간절한 것은 보고 싶다는 단 한 마디


먼지 나는 골목을 돌아서다가

언 듯 만나서 스쳐간 바람처럼

쉽게 헤어져 버린 얼굴이 아닌 바에야


신기루의 이야기도 아니고

하늘을 돌아 떨어진 별의 이야기도 아니고

우리 모두 잊혀진 얼굴들처럼

모르고 살아가는 남이 되기 싫은 까닭이다.



불행한 신(神)


오늘 나는 모든 욕망과

사물에 작별 하였습니다

그래서 더욱 친한 죽음과 가까워집니다

과거는 무수한 내일에

잠이 들었습니다

불행한 신

어디서나 나와 함께 사는

불행한 신

당신은 나와 단둘이서

얼굴을 비벼대고 비밀을 터놓고

오해나

인간의 체험이나

고절된 의식에

후회하지 않을 것입니다

또 다시 우리는 결속 되었습니다

황제의 신하ㅓ럼 우리는 죽음을 약속 합니다

지금 저 광장의 전주처럼 우리는 존재 됩니다

쉴 새 없이 내 귀에 울려오는 것은

불행한 신 당신이 부르시는 폭풍입니다

그러나 허망한 천지 사이를

내가 엄연히 주검이 가로놓이고

불행한 당신이 있으므로

나는 최후의 안정을 즐깁니다



세 사람의 가족


나와 나의 청순한 아내

여름날 순백의 결혼식이 끝나고

우리는 플랫홈으로 화려한

상품의 쇼우윈도우를 바라보며 걸었다


전쟁이 머물고

평온한 지평에서

모두 단편적인 기억이

비둘기의 날개처럼 솟아나는 틈을 타서

우리는 내성과 회한에의 여행을 떠났다


평범한 수확의 가을

겨울은 백합처럼 향기를 풍기고 온다

죽은 사람들은 싸늘한 흙 속에 묻히고

우리의 가족은 세 사람


트로소 그늘 밑에서

나의 불운한 편력인 일기책이 떨고

그 하나 하나의 지면은

음울한 회상지대로 날아갔다


아 창백한 세상과 나의 생애에

종말이 오기 전에

나는 고독한 피로에서

빙화처럼 잠들은 지나간 세월을 위해

시를 써본다


그러나 창 밖

암담한 상가

고통과 구토가 동결된 밤의 쇼윈도우

그 곁에는

절망과 기아의 행렬이 밤을 새우고

내일이 온다면

이 정막의 거리에 폭풍이 분다